[사설] 게임 시장의 발전과정을 통해 본 우리나라 규제의 나아갈 방향

초등학교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네트워크상에서 친구들과 게임을 하려면 모뎀을 사용해야 했는데, 모뎀은 집전화 회선을 사용하기 때문에 게임 중에는 집전화를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따금씩 국내에 몇 안되던 PC방에 가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아침 버스를 타고 멀리 서울 대학가 근처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듯 놀러갔었다.

당시 국내 게임 중 네트워크상에서 여러 명의 플레이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이라고는 문자로만 게임을 즐기는 MUD게임이 고작이었는데, 친구와 함께 PC방에 놀러가 처음 접한 ‘울티마 온라인’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 울티마 온라인과 MUD게임 비교 사진 ]

명작이라 평가받는 MUD게임을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해외 게임과 우리나라의 게임에는 한 눈에도 확연하게 드러나는 차이가 있었고, 외국 게임을 즐기기 위하여 억지로 외국어 공부를 하기도 하였다. 외국게임과 한국게임의 이러한 간극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국제이스포츠연맹 사무소의 소재지이자 매년 국제 게임대회를 석권하는 불세출의 게이머들을 배출하는, 명실상부한 게임시장의 리더가 되었다.

아쉬운 점은, 이렇게 게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나라 임에도, 국내 게임 산업은 이렇다 할 질적 성장을 보이지 못하고 사행성 게임의 양산에 집중되는 측면이 있으며, 모바일 게임 부분에서 이룬 양적 성장 조차도 최근에는 중국 등 해외에 주도권을 내주고 있다는 것이다.

게임을 즐기는 산업분야와, 게임을 제공하는 산업분야의 이러한 온도 차이는, 지난 시간 규제 당국이 게임을 바라보는 시각에 기인한 것이라 본다. 정부당국은 그간 게임산업이 가진 긍정적 잠재력을 인식하지 못한 채, 강한 규제들을 지속하여 왔다. 대표적으로, 10시 이후에 16세 이하 청소년의 게임 접속을 차단하는 셧다운제가 있으며, 실제 시행되지는 않았으나 장시간 게임 접속 시 게임 이용을 제한하는 쿨링오프제, 게임을 마약, 도박, 알코올과 같은 범주에 놓고 규제하는 일명 ‘4대 중독법’ 등이 발의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규제현실과 사회 분위기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만들어낸 바 있는데, 세계대회에 출전한 16세의 프로게이머가 대회 도중 접속이 차단되기도 하였고, 공중파 뉴스 기자는 PC방 전체 전원을 불시에 차단하고는, 흥분한 게이머들을 보며 게임이 폭력성을 키운다고 보도하기도 하였다.

 

[국제게임대회중 셧다운 장면과 공중파 뉴스 캡쳐 ]

이렇듯, 게임을 언젠가는 졸업해야 할 성장기의 전유물로 보는 규제당국의 태도와 사회적 분위기가 다양한 인재들이 실제 직업인으로서 게임 산업 종사자로 진출하는 것을 가로막아왔고, 게이머들의 폭발적인 애정에도 불구하고, 국내 게임 산업의 발전이 지체시켰다.

최근 4차 산업혁명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VR, AR 등 게임업계의 혁신도 함께 이슈가 되고 있다. 다행인 것은 이러한 혁신에 힘입어 게임 규제에 있어서도 반성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올 들어 첫 시행된 게임물 자체등급 분류제도는 게임제작자의 창의성을 확대해나가는 게임 자율규제의 첫 단추라고 볼 수 있으며, 이외에도 민간 자율규제 방식의 게임 규제 재설계 방안에 관한 다양한 정책 제언이 나오고 있다. 국내 게임개발분야의 산업이 세계를 선도할 수준으로 나아가는 것은 단시간 내 이루어지기는 어렵겠지만, 앞으로 국내 게임에서도 그 옛날 울티마 온라인을 처음 접하던 때의 감동을 주는 명작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법무법인 충정

Tech&Comms

엄윤령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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