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암호화폐 생태계에 있어 암호화폐공개 또는 발행(Initial Coin Offering, 이하 “ICO”)는 이러한 생태계를 탄생시키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암호화폐에 대한 논의가 주로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하여 이루어지다 보니 ICO에 대하여는 상대적으로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암호화폐가 발행되어야 이들이 거래되는 시장도 생성되고 동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암호화폐 생태계 전반을 논함에 있어 ICO는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ICO에 대한 법적 제도의 도입은 지지부진한 상태이며, 극히 일부 국가들의 경우에만 관련법이 입법화되었거나 그 과정을 거치는 중이다. 명확한 규제의 부존재가 ICO를 수행하려는 주체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불확실성을 가중시킨다는 점에서 위험으로 작용하여 ICO의 동력을 위축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적절한 수준의 규제 도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2.유가증권으로의 해석 문제 : 미국 사례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은 유가증권을 규율하는 법령이 이미 입법화되어 시행 중에 있다. 이는 비록 ICO를 특정하여 규율하는 법령은 아니지만, 해당 법 또는 판례에 의하여 어떤 암호화폐가 유가증권으로 해석될 경우 해당 법이 적용되어 유가증권 발행 절차를 준수할 의무가 발생하며, 이를 따르지 않고 ICO를 진행할 경우 형사적, 행정적 제재가 따를 가능성도 존재한다.
어떤 속성을 가져야 유가증권으로 해석되는지에 대하여는 국가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으므로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우나, 특정 ICO를 통해 발행된 암호화폐(이를 토큰 또는 코인이라고 칭하기도 한다)가 여러 종류의 유가증권 중 지급청구권을 표상하는 “채무증권”, 회사 또는 조합 등의 출자지분 또는 신주인수권을 표창하는 “지분증권”, 공동사업의 손익을 귀속 받는 계약상 권리가 표시된 “투자계약증권” 등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어 ICO 주체 또는 발행자의 주의가 요구된다.
판례법 국가인 미국은 1946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Howey 간의 재판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른바 “Howey Test”)을 기준으로 미국 증권법 상 증권 중 하나인 “투자계약”으로 판단하는데, 미국 SEC는 암호화폐 역시 Howey Test를 통해 4가지 기준에 따라 증권 여부가 판단되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어떤 암호화폐가 ① 권유자 또는 제3자의 노력만으로, ② 이익을 기대하고, ③ 공동기업에, ④ 금전을 투자한다는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경우 미국 증권법 상 투자계약으로서 증권으로 판단되며, 이러한 경우 신고 면제조건에 해당하지 않는 한 미국 SEC에 등록되거나 등록요건의 면제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실제로 2016년에 별도의 SEC 등록절차 없이 ICO를 진행했다가 해킹사건이 발생했던 DAO 토큰의 경우 SEC의 조사를 통해 미국 증권법 상 증권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 바 있다.
많은 국가들이 암호화폐의 법적 성격 및 ICO에 대하여 미국과 비슷한 입장을 취하는 점을 감안하였을 때 앞으로도 ICO 규제 중 유가증권성 판단에 있어서 미국의 태도를 계속 주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3. 일본의 ICO 법제화
일본은 세계 최초로 암호화폐(일본법 상 “가상통화”)를 법적으로 정의하고 그와 관련된 규제를 우리나라의 전자금융거래법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자금결제법”을 개정하는 방식으로 도입했다.
만약 어떤 암호화폐가 결제 및 송금수단으로서의 기능을 갖는 경우, 이는 자금결제법 상 가상통화에 해당할 수 있으며, 가상통화의 매매(ICO 포함)를 업으로 행하는 것은 가상통화교환업에 해당하므로 이를 행하기 위해서는 가상통화교환업자로 등록을 하여야 한다. 또한 가상통화교환업자는 범죄수익이전방지법에 따라 거래시 본인확인이 필요한데, 이는 금융기관에 부과되는 KYC(Know Your Customer – 고객신원확인) 및 AML(Anti Money Laundering – 자금세탁방지)와 같은 취지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어떤 암호화폐가 발행자 등이 제공하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대가로서 이용하는 기능을 가지는 경우에는 자금결제법 상 ‘선불식지불수단’에 해당할 수 있으며, 보유 비율에 따라 토큰 발행자가 행하는 사업으로부터 수익을 분배 받을 수 있는 기능을 가지는 경우 일본 금융상품거래법 상의 유가증권 중 ‘집단투자 scheme 지분’에 해당할 수 있어 자금결제법 상 가상통화에 해당하기는 어려워진다.
비록 일본 자금결제법 상에 ICO에 대한 상세한 가이드라인이 제시된 것은 아니나, 암호화폐를 세계 최초로 법적으로 정의하고, ICO를 함에 있어 등록의무를 부과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4. 스위스의 ICO 가이드라인
스위스의 금융위원회라고 할 수 있는 FINMA에서 지난 2018년 2월 19일 ICO 가이드라인(이하 ‘스위스 가이드라인’)을 발표하였다. 이번 스위스 가이드라인이 큰 주목을 받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먼저, 스위스의 가이드라인은 전세계 최초로 발표한 ICO 규제다. 일본이 지난해 자금결제법을 개정하여 세계 최초로 암호화폐를 법제화하였으나 개정된 자금결제법에 ICO에 대한 구체적인 방침이 명시되지는 않았다. 반면 스위스 가이드라인은 ICO를 기존 금융규제 체계 내에서 다룰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으며, ICO 규제의 목적, 대상, 적용규제 등을 상세하게 밝혀 현행 금융규제 하에서 ICO를 어떻게 규제할 수 있을지 실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두번째로 스위스 Zug주(Canton)는 세계적인 ICO의 메카 역할을 해오고 있다는 점이다. 스위스의 Zug주가 암호화폐에 친화적인 정책을 펼친 이래 수십 건의 대형 ICO가 스위스 법인을 통하여 이루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FINMA는 다른 규제 기관에 비하여 ICO에 대한 데이터를 풍부하게 축적하였을 것이다. FINMA는 이를 바탕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정하였다는 점에서 스위스 가이드라인이 향후 다른 국가의 ICO 규제에 미칠 영향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
FINMA는 스위스 가이드라인의 제정 목적을 단순한 규제가 아닌 블록체인 산업의 진흥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ICO에 대한 감독 및 규제 원칙을 밝히며 ICO 실무자들이 이 원칙을 따를 수 있도록 세부방침을 제공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FINMA가 ICO를 평가하는 주요 원칙은 해당 ICO가 현존 금융규제를 우회하기 위한 경제적 목적을 숨기고 있는지 여부이다. 즉, 모든 ICO를 일반화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각각 ICO를 실질적으로 분석하여 그 숨은 의도를 파악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스위스 가이드라인은 그 동안 축적한 평가자료를 바탕으로 토큰의 종류를 세 종류로 세분화하여 각각의 규제 방침을 제시하고 있다.
스위스 가이드라인은 암호화폐를 크게 지불형(Payment), 기능형(Utility), 자산형(Asset)으로 분류한다. 지불형이란 재화나 용역을 구매하고 반대 급부로 지급할 수 있도록 가치가 있는 암호화폐를 의미한다. 지불형 암호화폐는 원칙적으로 증권으로 취급되지 않으나, 자금세탁규정이 적용된다. 다음으로 기능형은 애플리케이션이나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전자적 권리 부여를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서, 일반적으로 증권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자산형은 채권, 지분권과 같은 권리가 화체되어 있는 것으로서 해당 암호화폐가 인허가를 받지 않고, 표준화되어 있으며, 대량 거래에 적합한 경우 스위스 법률인 Financial Market Infrastructure Act(FMIA)에 따라 증권으로 간주된다.
지금까지 암호화폐는 비공식적으로 기능형(Utility)과 증권형(Security)으로 구분됐다. 기존 증권형은 스위스 가이드라인의 자산형과 매우 유사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플랫폼 내에서의 지불수단 역할을 하는 암호화폐인 기능형을 다시 지불형과 기능형으로 나눈 점은 기존 분류법과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단, 암호화폐는 위 세 가지 유형 중 두 개 이상의 유형에 중복적으로 해당될 수 있으며 그러한 경우 각 유형에 적용되는 규제가 해당 암호화폐에 모두 적용된다.
스위스 가이드라인은 ICO 주체 또는 암호화폐 발행자 및 ICO 참여자(암호화폐 구매자)들에게 ICO 규제에 대한 예측성을 높이고, 규제당국 스스로도 ICO 실무에 대한 원칙을 밝힘으로써 향후 ICO를 안정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5. 끝으로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암호화폐에 대한 논의가 성숙해지고 각국 정부에서도 암호화폐에 대한 연구를 진전시켜 나감에 따라 ICO에 대하여도 구체적인 규제가 속속들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특히 ICO는 그 특성상 전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각국의 ICO 규제는 자국의 법체계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다른 국가들의 규제와 조화를 이룰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하여 암호화폐에 대한 범정부적 연구는 물론이고 세계적 흐름을 파악함으로써 ICO 생태계를 진흥시킴과 동시에 부작용을 예방할 수 있는 적절한 규제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법무법인 충정 Tech & Comms (기술정보통신팀)
법무법인 충정의 Tech & Comms (기술정보통신팀)은 제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인공지능(AI), 3D프린팅, 가상현실(VR)/증강현실(AR)/혼합현실(MR), 핀테크, 블록체인, 가상화폐, 가상화폐공개(ICO), 가상화폐 거래소, 드론, 전기차, 자율자동차, 신재생에너지, 게임, 공유경제 등 다양한 혁신 기술과 관련된 법적 이슈에 대하여 전문적인 법적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