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인포맥스] [리걸인사이트] 리콜법제, 소비자 권리 제한 명확한 근거 마련해야

(서울=연합인포맥스) 압도적인 기술력으로 매년 스마트폰 시장을 뒤흔드는 세계적인 기업 A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4년 전에도 한 차원을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는 스마트폰을 출시한다. 그런데 출시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배터리 폭발 사고가 속출하여 전격적으로 위 스마트폰 전량을 수거하기로 한다. 공산품 리콜은 소비자들의 참여도가 낮아 전통적으로 회수율이 매우 낮은 경향(위 스마트폰 리콜 시점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실시된 공산품 리콜의 회수율은 47% 정도에 불과하다)이 있음에도 A사는 리콜 실시 6개월 만에 거의 100%에 가까운 회수율을 달성한다. 소비자 만족도가 상당했으며, 불량률은 극히 경미했는데 A사는 어떻게 소비자들의 참여를 독려한 것일까?​

사실 소비자들은 선택권이 없었다. A사가 강제적인 OTA(Over-the-air)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소비자의 휴대폰 배터리 용량을 제한(최종적으로 0%까지)시켰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벽돌이 되어버린 자신의 휴대폰을 다른 휴대폰으로라도 교체하고자 순순히 회수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

위 스마트폰 소비자들이 A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에 대하여 법원은 위와 같은 배터리 충전 제한조치는 ‘원고들의 생명·신체의 안전이라는 더 큰 법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실시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취지로 원고패소판결을 선고하였다. 당시 급박한 사정을 감안하면 정당한 조치라고 느껴지기는 하나, 우리나라 현행법상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할 수 있을까?​

시중에 유통되는 공산품의 제조·설계 또는 기술상·구조상 특성으로 인하여 소비자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끼칠 우려가 있어 사업자가 리콜하는 경우에는 제품안전기본법이 적용된다. 위 스마트폰 리콜도 바로 이 법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법은 사업자가 리콜을 위해 취할 수 있는 조치로 “수거·파기·수리·교환·환급·개선조치 또는 제조·유통의 금지, 그밖에 필요한 조치”라고 포괄적으로 정하고 있어 리콜조치에는 법률상 제한이 없다. ​

필요하다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도 관련조치로 활용할 수 있다(위 법원은 A사가 ‘제품을 교환하여 주거나 제품구입비용을 환불하여 주는 조치’만 리콜조치로 포섭하였으나, 배터리의 충전 용량을 제한하는 조치는 바로 그 결함을 시정하고 수거·교환·환급을 독려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점에서 역시 널리 리콜조치로 보아야 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허용되는 것이다.​

가령 업데이트가 제품에 수익적일지라도 소비자가 원하지 않는 업데이트를 기업이 강제로 설치시킬 수 있는 명분은 없다(수일째 스마트폰 업데이트를 미루고 있는 지인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지 않는가). 침익적인 업데이트라면 더더욱 그러하다(구제품들의 업데이트 과정에서 사전고지 없이 배터리 용량을 제한시킨 또 다른 세계적인 기업 B사는 상당한 곤욕을 치렀다). 원칙적으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받아들일지 말지는 소비자가 직접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소비자의 권리를 제한하려는 경우에는 다른 기본권의 제한과 마찬가지로 ‘과잉금지의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즉 소비자의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때에만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 ​

헌데 제품안전기본법상 리콜과 관련하여 소비자의 권리 행사를 “법률로써” 직접 제한하는 규정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제품안전기본법 제11조부터 제13조는 리콜조치의 수범자를 “사업자”와 “정부”로 정하고 있고, 같은 법 제26조 제1항 제1호 및 제2호가 제11조 제1항에 따른 수거 등의 명령을 따르지 아니한 자, 제13조 제1항을 위반하여 해당 제품의 수거 등을 하지 아니한 자를 처벌하고 있기는 하나, 수거 등 명령의 수범자는 “사업자”이기 때문에, 이 역시 사업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일 뿐 소비자의 권리를 직접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소비자 대부분이 리콜에 끝내 불응했던 이른바 디젤게이트 사건(우리나라에서는 자동차 정기검사에서 불합격 판정 등으로 제재가 나올 때까지는 소비자가 해당 자동차를 자유롭게 타고 다녀도 관련법상 달리 규제할 수 없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종래 우리나라 현행법상 사업자와 국가는 소비자에게 리콜에 응해달라고 부탁할 수만 있을 뿐, 이를 넘어서 강제적인 조치까지 취할 수는 없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사용자의 안전을 위하여 위 스마트폰의 리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달라’고 당부하였을 뿐 위 스마트폰 소비자에게 어떠한 강제조치를 취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현행법상 ‘정부’도 아닌 일반 ‘사기업’이 소비자의 생명·신체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그러한 강제행위를 감행할 때 소비자는 무조건 수인해야만 하는 것인지, 국가조차 ‘헌법상’ 의무에 따라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오로지 ‘법률로써’ 안전벨트 착용 의무를 강제할 수 있는데(2002헌마518), 일반 사기업은 아무런 제한 없이 그런 후견적 개입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엄연히 말하면 매매계약의 대등한 당사자일 뿐인 매도인은 자신이 판매한 제품에 중대한 결함이 있다는 이유로, 매수인의 의사에 반해 그 효용가치를 떨어트릴 명분이 없다(호주는 소비자법 제52조에서 ‘어떤 사람(공급자)이 소비자에게 상품을 공급하면, 해당 소비자가 그 상품에 대해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는 완전한 소유권을 취득한다는 점을 보증하는 것이다’라는 규정을 통해, 공급자를 포함한 그 누구도 소비자로부터 해당 상품을 회수하거나 소비자가 해당 상품을 사용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권리가 없다고 해석하고 있고, A사도 위 규정 때문에 호주에서는 위 스마트폰의 배터리 용량을 60%까지밖에 낮추지 못했다).​

그러나 위 스마트폰 리콜사건과 같이, 소비자의 권리 행사가 정당한 수준을 넘어서는 경우(가령 정당한 사유 없이 리콜에 불응하여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위험을 가하는 경우)에는 ‘국가’가 과잉금지의 원칙을 준수하여 “법률로” 개입하여야 하며, 위 스마트폰 리콜사건과 같이 ‘사기업’에게 지나친 위험을 부담케 하면 안된다(디젤게이트 사건이 똑같이 발생했던 독일에서는 정부가 해당 자동차에 대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강제할 수 있는 법규가 마련되어 있다). 또 다른 대규모 리콜이 발생하기 전에 우리나라도 조속한 입법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법무법인(유) 충정 김한솔 변호사)

출처 : 연합인포맥스(https://news.einfomax.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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